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치매는 퇴행이 아닌 순환입니다. - 아이로 돌아가는 부모와의 동행

by haella 2025. 5. 10.
반응형

치매를 처음 마주하는 가족은 당혹스럽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모습을 보는 일은 마음 깊은 곳까지 흔들어 놓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인생의 퇴행'이라 표현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순환’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때 누군가의 아기였습니다. 부모님의 손길과 사랑 속에서 자라났고, 보호받으며 세상을 배워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인생이 한 바퀴를 돌아, 부모님이 다시 아이처럼 변해가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이제 그 손을 다시 잡아드리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것은 절망적인 퇴보가 아니라, 사랑의 순환이자 삶의 자연스러운 순리일지도 모릅니다.

 

 

노년기 퇴행 행동, 단순한 '망각'으로 보지 마세요

치매는 단지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닙니다. 감정, 시간 개념, 판단력, 언어 능력 등 전반적인 인지 기능이 점차 퇴행하는 복합적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단순히 뇌세포의 손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회적 고립, 외로움, 상실감 같은 감정적 요인이 병의 진행을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퇴행 행동은 많은 경우, 환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일 수 있습니다. 아이처럼 떼를 쓰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행동은 돌봄에 대한 갈망, 또는 통제가 안 되는 내면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반응일 수 있습니다. 마치 유아가 언어를 배우기 전, 울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죠.

부모가 아기처럼 변해갈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 첫째, 부모님의 변화는 ‘퇴보’가 아닌 ‘전환’입니다.
    비록 기억은 사라져도 감정은 남습니다. 이름을 잊더라도,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은 여전히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 둘째, 돌봄의 방식은 육아와 닮아 있습니다.
    간단한 말로 이야기하기, 반복적인 루틴 만들기, 함께 놀아주기. 육아에서 배운 그 모든 것은 노년기의 부모를 돌보는 데도 적용됩니다.
  • 셋째, 인내심은 감정을 읽는 열쇠입니다.
    치매 환자는 논리적 설명보다 감정적 공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왜 또 그러세요?”보다는 “괜찮아요. 나 여기 있어요.”라는 말이 더 효과적입니다.

가족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동행의 자세

치매는 단지 환자의 병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함께 겪는 '관계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더욱이 중요한 건 돌봄의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써내려가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아이처럼 변해가는 부모를 보며 우리는 때때로 슬픔에 잠깁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눈빛, 손끝의 미소, 익숙한 향기에 반응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고.

그 기억을 붙잡고, 그 감정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치매와 함께 걷는 여정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맺음말: 치매, 그 안의 따뜻함을 발견하는 길

"우린 모두 누군가의 아가였다"는 말처럼, 치매는 인간 삶의 원형적인 순환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부모님의 삶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우리 손에 안기는 그 순간, 우리는 또 한 번 사랑을 배웁니다. 그것이야말로 치매라는 병이 우리에게 남기는 뜻깊은 유산 아닐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