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인가, 시작된 두려움인가
며칠 전 월요일 아침, 평소처럼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야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씽크대 여기저기를 열어봐도 늘 쓰던 텀블러가 보이질 않더라고요.
결국은 다른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출근 준비를 마쳤습니다.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늘 주차하던 자리에 제 차가 없는 겁니다.
이쪽 저쪽 다 돌아봤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요.
결국 차 키를 꺼내 삑삑 소리를 내며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반응이 없었죠.
그제서야 주말 일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토요일 아침, 엄마를 주간보호센터에 모셔다 드리고 신촌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차가 너무 막힌다는 소식에, 근처 지하철역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하철을 탔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오는 길에 작은애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작은애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제 차를 다시 몰고 와야 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들고 터벅터벅 지하철역 공영주차장까지 걸어가 차를 찾았습니다.
혼자 걸으며 낄낄거리기도 하고, 어이없어서 기가 막히기도 했어요.
그리고 결국, 그 텀블러도 차 안에 있었더군요.
갱년기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위로해보지만,
치매 가족을 돌보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이런 작은 건망증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혹시 이게, 치매의 시작은 아닐까.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치매는 발병 15~20년 전부터 조용히 시작된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혹시 나도?
가끔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깊은 한숨을 쉬게 됩니다.
잠을 설칠 때도 많아졌고요.
하지만 다시 다짐합니다.
이 일상을 놓치지 말자고. 웃을 수 있는 지금을 감사하자고.
오늘도, 엄마와 함께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음을 기뻐하며,
나의 건망증도 한 편의 이야기가 되어 이렇게 남겨봅니다.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감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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