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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이야기

[치매 간병 일기] 엄마가 찾는 "엄마"…48년 전의 그리움

by haella 202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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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중,
엄마는 안방으로 들어가며 갑자기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엄마!”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엄마는 화장실 문을 열어보고, 드레스룸 문을 열어보고,
심지어 베란다 문까지 열며 무언가를 찾으셨습니다.

그 무언가는,
48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엄마의 친정어머니,
저에겐 외할머니인 전공녀씨였습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엄마의 기억은 점점 더 과거로 흘러가고,
그 흐름 끝에는 항상 외할머니가 계신 듯합니다.
생명의 뿌리, 존재의 시작점에서
엄마의 기억이 머무는 걸까요?

저도 모르게
집 안 구석구석을 같이 살펴보며
엄마의 마음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뵐 수 없는 외할머니를
엄마와 함께 찾아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엄마의 엄마가 계셨기에
엄마가 태어났고,
엄마가 있었기에
나도 세상에 왔구나.”

그렇게 또 하루의 간병이 이어졌습니다.

빨래를 걷어 엄마께 개어달라고 드리고,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니
엄마는 패딩을 입은 채
“이제 집에 가야지.” 하시며 현관 쪽으로 가셨습니다.

얼른 롱패딩을 걸치고
엄마 손을 잡고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겨울밤 찬 공기 속에서
10분쯤 걷고 나니, 엄마의 표정도 조금 부드러워졌습니다.

“엄마, 이제 우리 집 다 왔어요. 춥죠?”

집에 돌아와 따뜻한 쌍화차를 엄마께 드리고
저도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셨습니다.

이런 일상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엄마의 양치질을 도와드리고,
잠자리를 정리한 뒤,
엄마 옆에 앉아 오봉이 영상을 틀어드렸습니다.

조금 전에는 외할머니를 찾으시더니
이번엔 오봉이를 찾으십니다.

엄마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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